2-3년 전부터 신문, 방송에 과학이 아닌 것을 과학인 것처럼 말한 것은 없
는지 눈여겨보고 있다. 엊그제는 얼굴 특징에 그 사람의 성격이 반영된다
는 신문 기사를 발견했다. 관상에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일까? 서양에서도
1940년대 유사한 연구를 한 학자가 있었다. 통계적으로 상관성이 성립된다
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으나 오류가 지적되는 등 과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과학자라면 인과론이 성립된다고 보기 어려운 것을 알 수 있다.
관상뿐이 아니다. 그 동안 비과학이라고 불리던 온갖 것들이 과학인양 나
타나고 있다. 신문도 그렇지만 호기심을 끌 일이면 무엇이든 과학의 모양
새를 갖추어 전달하는 방송이 주 전파자이다. 신비현상을 사실적으로 꾸며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작가도 있다. 신비한 힘을 시술하거나 신비한 물질로
돈을 벌기 위해 이렇게 하는 사람도 있다. 점술이 과학이라고 말하는 학자
가 있는 마당에 이들이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신비에 대한 믿음은 인간이 허허벌판 이 땅위에 발붙인 때부터 배양돼 온
것이다.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이를 미신이라고 불러 멀리하도록 경계하고
있으나 그것은 사실상 본성적 믿음이다. 때문에 과학이라는 한 마디가 일
시에 장벽을 허물어 버린다. 그렇다고 신비가 살아 숨쉬는 전통문화를 부
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로 느끼게끔 하여 함께 숨쉬고
발전하고 곤경에서 헤어나도록 하는 지주이다.
다만 전통시대 만들어져 문화의 일부가 된 우주, 자연, 인간 생명의 모습이
어느 누가 과학이라고 했다고 해서 쉽게 과학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말 하
고자 한다. 서양에서도 1500년 이상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려낸 세계의 모습
을 진리로 여겼다. 종교적 교리에 부합된 때문도 있다. 이와 결별하여 객관
적인 관찰을 통해 나온 자료를 일반화하여 원리를 도출하는 방법론을 갖고
새롭게 세계를 파악하기 시작한 것이 과학이다.
이렇게 해서 밝혀 낸 우주의 원리를 활용하여 우주탐험을 이루고 자연 속
동식물과 인간 생명이 영위되는 이치를 파악함으로써 이들이 한 그물 속
존재임도 알게 되었다. 또한 그 운영원리를 기술로 활용하여 식량, 에너지,
보건문제를 해결했다. 그 이전에 과학은 전통 시대 인간의 삶에 검게 드리
웠던 마술적 신비의 장막을 걷어 내어 합리적인 밝은 세상으로 인도했다.
그런데 어째서 과학을 왜곡하고 전통 믿음에 애써 거짓 과학의 옷을 입히
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