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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12/08 글 옮김, 투린 수의 미스터리
  글쓴이 : kopsa     날짜 : 00-10-10 15:05     조회 : 4836    
99/12/08 글 옮김, 투린 수의 미스터리

 20년만에 처음으로 1998년 4월에서 5월에 걸쳐 '투린의 수의(Shroud of
Turin)'가 이탈리아 투린 세례요한 성당(Cathedral of St. John the Baptist)에 
전시되었다. 이것은 수의의 이미지 사진이 처음 찍혀진지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카톨릭에서는 이 수의를 진짜로 믿는 것일까? 아니면 상
징적인 의미로 이런 전시를 계획한 것일까?

1. 투린 수의 이야기 시작

 투린 수의가 역사에 나타난 것은 프랑스 리르이(Lirey)의 한 교회에 이 수의가
전시된 1350년대부터이다. 당시 외국의 순례자를 포함한 사람들은 돈을 지불하
고 이 수의(Lirey cloth)를 관람하였다. 수의의 소유자는 별로 부유하지 않은 군
인이었는데 어떻게 이 수의를 얻게 되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이것이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의라면 대단한 가치를 지녔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어떻게 13세기 동안 숨겨져 있다가 이상하게도 불쑥 나타났을까? 이에
의심을 품은 프랑스 주교(Henri de Poitiers)가 조사한바, 가짜 수의라는 것을 알
고는 돈벌이 목적의 수의 전시를 금지시켰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 후 수의는 다시 전시되기 시작했다. 이에 후임 주교
(Pierre d'Arcis)는 1389년 교황(Pope Clement VII)에게 전임 주교의 조사 내용
을 포함한 장문의 편지를 보내 이런 행동이 교회에 경멸과 영혼에 위험성을 가
져온다고 말하였다. 교황은 관심을 표명하며 전시는 허용하지만 단지 모조품으
로서만 광고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지시는 점차 잊혀졌으며 수의의 원소유자의 손녀도 이를 모른 채
이것을 사보이가(House of Savoy)에 팔았는데, 사보이가는 후에 이탈리아 군주
가 되었으므로 수의는 이탈리아 투린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이탈리아 왕이 유배
당한 후 사망할 때에 유언에 의해 이 수의는 바티칸에 귀속되었다.
 
 이러한 간략한 역사적 내용으로 보아 현재 투린 수의는 바티칸의 소유이며
1998년 전시도 이들의 결정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 수의를 진짜로
믿는 것일까? 아니면 공식적으로 모조품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필자는 이
에 관한 명확한 자료가 없다. 아마도 카톨릭에서 이 수의의 진위에 대한 공식 
입장을 표하지 않은 채 현재에 이르렀고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뒤에 1898년 사건부터 별도로 기술하겠으나 그 이전에 이 수의가 1532년 투린
교회의 화재로 인해 손상을 입었다는 내용을 이곳에 적는다. 은이 입혀진 성골
함 캐스킷이 타고 있는 동안 물로 진화되었다. 그 결과 수의에는 은방울이 떨어
져 생긴 탄 구멍이 나 있으며 물은 부분적으로 후에 논란이 인 인체의 이미지에
손상을 주었다. 지금은 기워 댄 불탄 구멍이 중앙 양쪽에 삼각의 줄로 남아 있
다.

2. 투린 수의에 대한 과학적 관심

  과거 오랜 세월 전에는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나 현재 맨눈으로 보아 투린 수
의 위의 이미지는 희미하고 몽롱하다. 그 이미지는 짚 색깔이고 오래된 천 보다
는 약간 검다. 그저 수의라는 것 외에 이미지에서 어떤 특별한 것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100년 전에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런데 1898년 처음 사진으로 이미지를 찍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음
화(검은 바탕에 흰 이미지)에 고딕 형태의 선명한 그림이 나타났으며 그것은 예
수 그리스도와 같이도 보였다. 의견이 분분했다. 수의연구 학자와 성직자는 이
이미지가 기적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추론하였다.
 
  20세기 상반기 투린 수의는 학문적 논란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카톨릭을 제외하고는 그저 그런 수의가 있다는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좀 더 선명한 사진을 갖고 1960년대 초 어떤 학자는 그 이미지에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나온 혈흔이 정확히 일치되게 나타나 있다는 등 주장도 하였다. 아마
도 이런 저런 주장에 끌려 카톨릭은 이 수의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다.
 
 이들은 1969년과 1973년에 약간의 이탈리아 과학자에게 수의에 대한 제한된
실험을 허용하였다. 물론 이런 사실은 비밀에 붙여졌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결과
는 부정, 긍정 복합적인 것이었다. 수의의 이미지가 정상적인 그림 그리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으나 소위 혈흔부위에서  채취한 혈액 시험은
부정적이었다. 전체적으로 1976년 보고서의 논조는 회의적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연구에 참여한 전문가 두 사람은 심지어 이미지 사진의 음화는 예술적 프린팅
기법에 의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제시하였다.

 그러던 것이 1976년 잭슨(John Jackson)과 점퍼(Eric Jumper)에 의해 수의 이
미지에 독특한 3차원의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는 발표가 나왔다.  뉴멕시코의 공
군연구소에 근무하는 두 사람은  '수의 속 인간(Man in the Shroud)'의 조상
(statue)을 만들 수 있었으며 그 이미지로 보아 수의는 시체를 덮었던 것으로 나
타났다고 한 것이다.
 
  잭슨과 점퍼는 수의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성을 역설, '투린 수의 연구프
로젝트(Shroud of Turin Research Project, STURP)를 성안하여 1977년 3월에
창립총회를 가졌다. 수의는 1978년 9월에 투린에서 공개적으로 대중에게 전시된
다음에 카톨릭은  좀 더 철저한 조사를 허용하였다. 수의의 이미지가 부활의 
짧은 순간 나온 복사선 에너지에 의해 생긴 것이라는 이전의 3차원 발견을 좀
더 부각시켜 주었다. STURP에 가담한 거의 모든 새로운 회원들도 이를 인정하
였다. 예측했던 대로 미디어는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여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
게 되었다.
 
 이것이 수의 이미지의 복사선-흑변(radiation-scorch) 가설이다. 그러나 이 가
설은 과학 학술지에 발표된 것이 아니며 흔히 1977년 STURP 학회에 발표된 것
이 인용된다. 이에 관한 많은 학술적 비평이 있겠으나 예를 들어 뮐러(Marvin
M. Mueller)는 1982년 논문에서 만일 거리에 대한 이미지 명암의 상관 플럿에
자료의 분산이 없다면 실험에서 나온 대로 진정한 3차원 모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고 하였다. 따라서 여러 점을 이어 선으로 만드는
과정(smoothing이라고 한다)에서 얼마든지 인간 모델와 일치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82년까지의 상황으로 보아, STURP 과학자들은 대체적으로 뮐러의 견해에
동의하여 3차원 효과의 의미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잭슨 그룹과
같이 종래의 복사선-흑변 가설이나 이와 유사한 가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학
자들이 있었다. 이들의 주장은 언론에서 다뤄지고 또한 책도 출간되었다.

  일면 투린 수의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병리학적 분석도 행해졌다. 1973년 국
제적으로 인정받는 일단의 학자들은 수의에 남은 혈흔이라고 주장되는 것에 대
한 검사를 하였다. 그러나 모두 결과는 부정적이었다. 이에 대해 STURP는  혈
흔부위에서  비록 나트륨, 칼륨은 나오지 않았으나 철, 단백질, 포르피린 양 물
질이 검출된 것으로 보아 아직 혈흔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였다.
     
 실제 혈흔에 대한 해결은 시카고에서 매크론 연구소(McCrone Research
Institute)를 운영하는 국제적인 미량분석의 권위자 매크론(Walter McCrone)에
의해 나왔다. STURP 회원이기도 한 그는 1978년 수의를 검사하는 과정에서 혈
흔 부위에서만 산화철을 발견하였다. 좀 더 자세히 연구한 결과 그는 혈흔이 중
세기에 사용되면 물감임을 그 물감의 이름까지 밝혀 내었다. 이런 일로 매크론
은 STURP로부터 제명되었다.
 
 1988년 마침내 탄소동위원소 연대 측정이 이뤄졌다. 이것은 취리히, 옥스퍼드,
애리조나 대학에서 독립적으로 실험된 것이다. 그 결과 이 수의가 기원
1260-1390년경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대는 처음 프랑스에 수의가 나타난 때
와 일치한다. 그후 미생물 오염에 의해 방사성탄소 연대가 변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나와 이를 반박하기 위해 13세기 변화가 있으려면 수의 옷 무게의 2배
이상의 오염이 있어야 한다는 해석도 나왔으나 의례적인 주장이라고 본다.
 
 또한 수의 혈액 샘플에서 DNA가 검출되었다는 소문도 떠돌았으나 실제 그
출처인 텍사스 대학 트라이온(Victor Tryon)은 "수의를 만진 적이 있는 모든 사
람은 그것에 DNA를 남길 수가 있다"고 말했다. 이외 화분(pollen)과 관련된 내
용은 이 글의 마지막에 기술한다. 

3. 수의의 제조과정으로 살펴보면

 투린 수의는 어떻게 제조된 것일까? 모든 가능성을 열거하면 3가지이다.  첫
째로 십자가에 못 박힌 시체로부터 수의로 이미지가 자연적인 과정에 의해 전달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초자연적인 과정에 의해 이미지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으나 이 경우 초자연적인 과정이기 때문에 과학으로 토의가 불가능하
다. 셋째로 인간이 가짜로 만들었을 가능성이다.
 
 접촉전달(contact transfer)이나 증기전달(vapor transfer) 같은 자연적 과정은
19세기 말 수의 이미지 사진이 나온 때부터 제기된 가설이며 STURP의 지지를
받은 것이다. 여러 부정적 증거들이 있으나 한 두 가지를 보면,  접촉전달의 경
우 안구의 이미지가 가능하지 않으며 천이 시체를 담을 수 있도록 완전하다고
해도 펴놓은 상태에서는 이미지가 뒤틀려야 하는데 이것은 수의에 나타난 이미
지와는 다르다. 시체로부터 천으로 증기전달을 가정할 경우 이미지의 총체적인
번진 이미지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번진 이미지는 일정한 거리를 가로지르는
확산과정이 아니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짜로 만들었을 가능성을 보자. 이때 천에 어떻게 흑변을 일으킬
수 있었을지, 흑변은 셀룰로오스의 탈수에 의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화학적인
탈수 해석이 중요하다. 낮은 온도로 가열한 낮은 양각형으로 그렇게 했을 수도
있지만 실제 천과 접촉하는 어떤 것도 탈수를 일으킨다.
 
 또한 기름이나 레몬주스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이 탈수를 가속화한다. 이 때
탈수된 셀룰로오스만에 의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탈수 촉진제는 아주 약간만
사용하여 자연적으로 증발 등에 의해 없어지도록 하는 것이 좋다. 때로 표면만
탈수를 일으키기 위해서 촉진제는 분말이나 반 고체상태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1978년 니켈(Joe Nickell)은 12세기에 사용되던 비비기(rubbing) 기법으로 수의
의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 방법은 우선 양각 조각물에 천을 적셔
씌워 건조된 다음에 칠 도구를 사용하여 그 위에 물감 탈수 촉진제를 비비는 방
법이다. 약간만 조심스럽게 절차를 취한다면 얼마든지 수의의 이미지와 동일한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된 것이다.

4. 누가 어떤 목적으로 만든 것일까, 화분 논쟁

 수의를 어떻게 만들었을지, 앞서 기술한 내용도 흥미롭지만 누가 어떤 목적으
로 만든 것인지는 그리 알려져 있는 것 같지 않다. 이종호 박사는 < 세계의 불
가사의 21가지 >에서 "아랍인들은 십자군 전쟁(1096-1270)에 참가한 유럽인들이
예수에 관계되는 모든 유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을 알아차렸다.....결국 아랍인
들은 가짜로 수의를 만들어 성유물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유럽인들에게 판
매함으로써..."라고 적었다. 가짜 수의를 아랍인들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글의 제일 앞 프랑스 주교(Henri de Poitiers)가 어떻게 이 수의가
가짜인 것을 알았는지 피에르(Pierre d'Arcis)가 교황(Clement VII)에게 보낸 편
지에는 수의를 만든 지방 미술가의 자백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이 가
짜 수의를 신앙치료에 이용하게 하여 돈을 벌 목적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랍인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여러 작가들
이 여러 이야기를 하였을 것이지만 아마도 윌슨(Ian Wilson)의 1979년 책 < 투
린의 수의: 예수 그리스도의 수의?(The Shroud of Turin: The Burial Colth of
Jesus Christ?) >에서 십자군이 아랍인에게서 얻었다는 이야기를 취했을 것이라
고 생각해 본다.
 
 윌슨에 의하면 수의 위의 이미지는 만딜리온(Mandylion)으로 알려진 고대 에
데사 이미지(Image of Edessa)이다. 4세기 전설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나병
에 걸린 에데사 왕 아브가르(Abgar)에게 보내는 위로 선물로서 옷감 위에 기적
적으로 그의 얼굴을 새겨 넣는다. 만딜리온은 에데사에 943년까지 남아 있다가 
비잔틴 인에게 압수되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 그 후 윌슨에 의하면 십자군
에 의해 프랑스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가르와 예수의 역사는 출처가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만딜리온은
단지 얼굴 모양만을 담고 있다.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을 덮은 수의와는
다르다. 또한 윌슨의 책은 동위원소 측정이 이뤄지기 전에 나온 것으로 연대로
보아도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윌슨이 자신의 가설을 지지해 주는 증거 중 하나
로 열거한 프라이(Max Frei-Sulzer)의 '팔레스타인 화분(Palestinian pollen)'은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50년부터 지방에서 법의학 연구소를 운영하던 스위스의 범죄학자 프라이는
1973년 수의 위원회의 컨설턴트 자격으로 수의로부터 검체를 채취할 허가를 받
았다. 그는 수의 표면에 점착성 테이프를 대어 표면의 것들을 검체로 얻었다. 다
음 2년간 그것을 분석한 결과 1976년 3월에 그는 "그리스도가 살던 시대에 팔레
스타인에서만 자란 식물에서 유래할 수 있었던" 어떤 화분을 발견했다고 발표하
였다.
 
 프라이는 1979년 또한 수의에서 발견된 화분이 두 개의 다른 비유럽지역, 즉
이스탄블(이전에 콘스탄티노플)과 우르파(Urfaㅡ고대의 Edessa)를 포함하는 아
나톨리아 대초원(Anatolian steppe) 지방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1982년 프라이
는 근동과 터키를 여행하여 화분을 얻어 이와 비교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프라이의 발견은 앞서 말한 윌슨의 이론을 지지함에 틀림없다. 그러나
프라이의 발견에 문제가 있다는 비평은 여러 분야에서 나왔다. 아마도 대조 검
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오염의 가능성이다. STURP 과학자가 <
사이언스 >에 발표한 1981년 논문에 의하면 바람에 의해 또는 수의를 참관한
방문자에 의해 오염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1982년 시카고에서 개최된 국제 현미경학 학술회의에서 샤퍼스만(Steven
Schafersman)은 유럽에만  있던 이 수의에서 33개의 중동 화분이, 그것도  어떻
게 팔레스타인, 이스탄불, 아나톨리아 대초원에서만 도달할 수 있었겠느냐고 의
문을 표하였다. 그런 선택성이라면 기적적인 바람이 아니라면 가능하지 않으리
라는 것이다. 1993년 매크론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프라이에게 화분의 농도가 어느 정도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평방 센
티미터당 1개 정도라고 했다. 그 숫자와 테이프(수의에서 검체를 채취한)의 수
그리고  길이를 고려하건대, 그의 또는 나의 테이프에 있는 전체 화분 그레인의
수는 100개가 넘을 수가 없다. 그런데 그가 지난 650년간 공개적으로 전시되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주로 취급된  옷감에서 49종의 팔레스타인 화분만을 발
견할 수 있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내용은 프라이 연구가 전혀 믿을 수 없다는 강한 증거이다. 그런데 1999
년 8월 2일 세인트루이스에서 개최된 국제 식물학회에서 어떤 연구자가 투린 수
의에서 8세기 이전 예루살렘에서 발견되는 화분과 '꽃 이미지(floral image)'를
발견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학술발표가 아니었고 그 연구자의 책을
출간할 예정인 미주리 식물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그
주장은 과거에 부정된 것들에 기초하고 있었다고 한다.
 
 꽃 이미지만 해도 그렇다. 그 동안 수의에서 로마 동전모양이나 예수라는 표
기가 나왔다는 등 여러 주장이 있었다. 꽃 이미지는 이미 전에 한 정신병리학자
에 의해 나온 것이며 수의를 지지하는 앞서 말한 작가 윌슨도 사람의 마음이 그
런 것을 보도록 만든다고 말한 것이다.     
 
5. 참조

1) Marvin M. Mueller, The Shroud of Turin: A Critical Appraisal, in       
 Science Confronts the Paranormal, Kendrick Frazier, ed., Prometheus,     
  Amherst, New York, 1986.
2) Joe Nickell, Blooming 'Shroud' Claims, Skeptical Inquirer,               
    November/December 1999, p. 22-23.
3) Joe Nickell, Pollens on the 'Shroud': A Study in Deception, Skeptical     
  Inquirer, Summer 1994, p. 379-385.
4) Joe Nickell, Science vs. 'Shroud Science', Skeptical Inquirer, July/August 
  1998, p. 20-22.